[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고산방학도'와 무성무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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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고산방학도'와 무성무취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2-08-05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누구나 종이학 접기 했던 기억이 있을 법하다. 제법 고난이도 종이접기 아니던가. 아이의 바람직한 성장을 바라는 마음으로, 아내가 천 마리 학을 접어 커다란 유리병에 담아 놓은 적도 있었다. 그 시간에, 그 정성으로 도움 되는 일 하나라도 더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도 했었다. 훗날 깨달음이다. 때로는 간절한 마음이 섣부른 행동보다 더 중요하고 필요한 경우도 있다.

종이학이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일까? 접는 정성이 소원을 이루어줄까? 우리 의식 속에 학(두루미)은 고귀한 날짐승으로 존재한다. 날짐승 자체가 허공을 마음껏 비상하여 자유의 상징이다. 게다가 서있거나 걷는 모습, 날개 짓 등 자태가 우아하고 품격이 있다. 때문에,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것을 시작으로 무수히 생활 주변에 등장하여 쉽게 만날 수 있다. 상서로운 일이나 고귀한 의장에 약방의 감초처럼 나타난다. 매우 친숙하다. 도가에서는 신선의 상징, 유가에서는 현인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지금도 사랑받기는 마찬가지다. 새해 축하 인사장에서부터 등장, 건강, 소망, 복, 자유, 장수, 평화, 행운의 상징이 된다.

천년 학이라 하여 수명이 천년 이상인 영물로 여겼다. 날짐승으로선 꽤 긴 것이 사실이나, 실제는 최대 80년이라 한다. 어쨌거나 장수의 상징으로 손색없는 십장생 중 하나이다. 대부분 일월, 구름, 소나무 등과 같은 십장생과 함께 등장한다. 조선 선비가 즐겨 입었던 '학창의' 자체가 학의 모습을 본떠 만든 옷이다. 백색 창의의 깃, 소맷부리, 맨 가장자리인 도련 둘레를 검은색 천으로 둘렀다. 운학문이나 쌍학이 구름사이로 날며 춤추는 청자, 학을 수놓은 문신의 흉배와 각종 의상, 문갑, 함, 필통, 베갯모, 주머니 등 수많은 생활용품에 장식되어 있다. 누구나 닮고 싶은 대상이었던 것이다.

흠모하는 것에서 나아가 직접 기르기도 하였다. 옛사람들 나름, 즐기는 것이 지금보다 오히려 많았다. 다양할 뿐만 아니라 그 경지가 심오하다. 학 기르기도 오늘날 애완 생물 기르는 것 못지않았던 모양이다. 홍형순의 연구 <조선시대 사가(私家) 정원에서의 양학(養鶴) 사례>에 의하면, 신분 구분 없이 학을 길렀다. 특정지역에 한정 된 것이 아니라 경향각지에서 기른다. 행실의 전범(典範)이었으며, 이상향이었기 때문이다. 송나라 매처학자(梅妻鶴子) 임포(林逋·967∼1028)의 고사가 토대이기도 하다. 워낙 많이 기르다 보니, 학 길들이는 전문가도 등장하고, 학 생포, 유통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도 출현한다. 지나쳐서 학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깃털을 자르기도 하고, 학대하기도 하였다.



당연히 많은 문사의 글 소재가 되기도 하고, 춤으로 풀어내기도 한다. 온몸을 감싸는 학 탈을 쓰고 추는 궁중학무도 있고, 동래학춤과 같이 도포나 바지저고리 차림으로 추어지는 민속무도 있다. 덧배기 춤이나 한량무의 영향이 있는 탓인지 풍류적인 면도 있어, 퍽 우아하고 멋스럽다.

전문 화가에게도 동경의 대상임은 다르지 않다. 산수화에도 등장하고 고사인물도에도 수없이 등장한다. 특히 고아한 삶을 추구했던 김홍도 그림에 많이 등장한다. 그림은 정선(鄭敾, 1676-1759)의 <고산방학도(孤山放鶴圖)>이다. 동일한 화제, 유사한 내용의 작품이 두 점 있는데, 그림은 왜관수도원 소장품이다.

그림
정선(鄭敾), 고산방학(孤山放鶴)|비단에 엷은 색|29.1×23.3cm, 왜관수도원 소장
그림에 얽힌 사연이 길다. 독일에 다녀왔다. 1911년, 1925년 두 차례 선교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독일 신부 노르베르트 베버(Norbert Weber, 1870∼1956)에 의해 수집되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2005년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이 왜관수도원에 영구 임대형식으로 보낸 《겸재정선 화첩에 그려진 21작품 중 하나이다. 현재는 왜관수도원이 기탁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한다.

화제에 등장하는 고산은 위에서 언급한 바 있는 매처학자 임포이다. 방학은 학에게 자유를 준다는 뜻이다. 임포가 학을 놓아주었다는 고사이다. 임포는 북송대의 은일시인이다. 뛰어난 시인으로 서화에 능하고 박학다식하였으나, 세상 영욕을 멀리하고 독신으로 살았다. 저장성(浙江省) 항저우(杭州)의 서호인근 고산에 은거하며 매화 300여 본을 심고 학과 함께 어울렸다. 고매한 성품을 서로 알아본 탓일까? 상호 구속하지 않았음에도 늘 함께하는 벗이었다.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식처럼 여기며 살았다하여 매처학자(梅妻鶴子)로 불리며, 서호처사(西湖處士), 고산처사(孤山處士)로도 불린다. 처사는 도덕과 학문이 뛰어나지만 세상에 나오지 않은 사람을 이르는 말 아닌가? 임포는 처사의 대표 인물이기도 하다.

눈 덮인 산야에 매화가 활짝 피고, 학 한 마리가 날고 있다. 동자를 데리고 나온 선비가 매화나무에 기대어 즐기고 있다. "울음이 들리는 듯, 향기가 번지는 듯하나, 어찌 무성무취 같으랴 (鳴似聞之, 香似播之, 曷若無聲無臭.)" 소리가 없고 냄새가 없는 것, 그것이 하늘의 뜻이요, 성인의 모습일까? 고사와 함께, 큰 소리는 소리가 없다는 대음희성(大音希聲)을 다시 생각해 본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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